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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3. 13世 〉31. <태사공>풍양재기(楓陽齋記)휘난서(諱蘭瑞)
1. 문헌 목록 〉14. 14世 〉2. <요재공>고의사진용교위행의흥위부장부곡공휘정의비명(故義士進勇校尉行義興衛部將釜谷公諱廷義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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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재공>장사랑공휘숙묘갈명(將仕郎趙公諱淑墓碣銘)
將仕郞趙公諱淑墓碣銘 將仕郎趙公墓萬年之藏在雅山坊使臣院書堂洞左嶝壬坐原九世孫東遂甫狀公行徵不侫以阡刻之文公之世今殆三百年矣雖其生卒有不可得詳而其遺敎餘澤至于今傳諸子孫而不沫率皆飭躬潔行誦詩説禮爲模楷鄉里根固者其支必暢源深者其流必達理不可誣也謹按公諱淑其先玉川人高麗門下侍中諱元吉爲肇祖我端宗朝遯世菴諱潤屋文大司諫與申歸來末舟同其出處享德川祠寔爲高祖曾祖諱繼弘生員祖諱邦寶敎授考諱德隣號慕菴參奉以壽陞僉知中樞府事公忠厚敦慤尚德不尚文其平居勵志從事於聖賢爲己之學要以扶植倫綱開導後進爲己任婆娑丘壑不屑仕進配端人全州崔氏浩其考葬公同原雙封三男長相夏次時雄季相説孫以下蕃不錄古人云不知山見其木可矣東遂愷悌士也其言足以徵信豈史遷徵畵工與醫藥之比哉遂爲之銘曰溫玉之姿篤生名門克紹前烈惟德是敦積厚而發椒聊其蕃롮流而求可以溯源家詩户禮遺風尚存仁江之上有菀其墳琢辭不媚百世敢諼 一九六四年 甲辰 十月 日 立 安東 金正會 撰書 有司 九世孫 東遂 장사랑공휘숙묘갈명(將仕郎趙公諱淑墓碣銘) 將仕郎 趙公의 墓 萬年의 무덤은 雅山坊 使臣院 書堂洞 左嶝 壬坐原에 있다. 九世孫 東遂가 公의 行狀으로 내게 墓碣文을 請하는데 公의 세상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三百年이라. 비록 그 生卒도 자세치 못함이 있으나 그 遺敎와 餘澤이 至今껏 子孫에게 傳하여 사라지지 않아 모두가 몸을 조심하고 행실을 깨끗이 하며 詩를 외고 禮를 말하여 鄉里의 模範이 되니 뿌리가 견고하면 그 가지가 반드시 무성하고 근원이 깊으면 그 흐름이 반드시 뻗친다는 이치가 거짓이 될 수 없었다. 삼가 살피건대 公의 諱는 淑이오 그 先代는 玉川人으로 高麗 門下侍中 諱元吉이 肇祖이고 端宗朝 遯世菴 諱潤屋은 文科 大司諫으로 申歸來 末舟와 함께 出處를 같이 하므로서 德川祠에 享祀되니 이 분이 高祖가 된다. 曾祖의 諱는 繼弘이니 生員이고 祖의 諱는 邦寶이니 敎授이며 考의 諱는 德隣이니 號가 慕菴이고 參奉으로 壽職 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公이 忠厚하고 정성스러우며 德을 숭상하고 文을 숭상하지 않으며 平居에 뜻을 가다듬어 聖賢의 爲己의 學에 從事하여 倫綱을 扶植하고 後進을 開導하는 것으로 使命을 삼았으며 丘壑(언덕과 구렁)에서 逍遙하여 벼슬 길에 나아가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配 端人 全州崔氏는 浩가 아버님이고 葬禮는 公과 같은 둔덕에 雙墳으로 모셨다. 三男에 長은 相夏이고 次는 相雄이며 季는 相説이다. 孫이하는 蕃多하여 수록하지 않는다 古人이 말하기를 山을 알지 못하면 그 나무를 보면 된다고 했는데 東遂는 端雅한 선비라 그 말을 足히 믿을 수 있으니 어찌 史馬遷이 畵工과 醫員 藥師에게 징험한 것에 비기겠는가? 이에 銘을 하니 다숩다. 두터운 玉같은 자질로 名門에 돈독히 태어나 先代의 偉業을 이어받아 오직 德이 두터웠네. 두터운 德을 쌓아 發蔭함에 자손이 번성하고 흐름을 따라 求하니 근원을 찾을만 하겠네. 家家戶戶호 詩를 하고 禮를 하니 遺風이 아직도 남아 있네. 仁川江 위 아름다운 무덤 있어 碑銘을 짓되 아첨하지 못하니 百世에 어찌 거짓말을 하겠는가? 一九六四년 甲辰 十월 일 安東 金正會는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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